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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한자] 역지사지 - 자기눈에 들보/상대눈에 티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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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은 이렇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라"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라"



참 좋은 뜻이지요~ 말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은 말이지요 ! 모두가 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면 싸울일도 다툴일도 없겠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은 우선 자신을 먼저 생각할수 밖에 없잖아요. 자기 손끝에 찔린 작은 가시가 상대방의 중병보다 더 아프다고 하듯이요.
그래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나지 않았을까요?

 

 

 

 

이 고사성어는 내맘대로 살수없고 상대를 생각하며 배려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지만 내 멋대로 내 하고 싶은대로만 하고 살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나만 생각하면 항상 자신은 손해보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나의 입장을 생각하면 상대는 또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이런 얘기 많이 들어 보셨지요?



"자신의 눈에 들보가 있는데 상대방 눈에 티끌을 빼낸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


내눈에 들보가 있는데 티끌이 들어있는
상대를 지적한다면 그야말로 입장 바꿔 생각할 일이지요.

내 눈에는 들보가 있는가 아니면 티끌이 있는가?

확인은 필수 !

 

 

 

 

'유래' 는 이렇습니다.


맹자의 이루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 되었다고 합니다.

옛날 중국에 하우와 후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지요. 나랏일을 돌보는 벼슬아치였어요.

하우는 중국 하나라의 물길을 다스리는 일에 능한 사람이었고 후직은 중국에서 농업의 신으로 알려질 정도로 모든 농업을 주관했다고 전해집니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이 세 번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할정도로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 했지요. 덕분에 백성들이 살기좋은 때를 누렸다고 합니다.

또 공자의 제자인 안회는 난세에 누추하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가난에 구애받지 않고 도를 즐기며 살았다고 합니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은 태평성대에 살았고 안회는 난세에 살았으니 정반대의 환경에서 살았지만 만약 서로의 처지가 바뀌었더라도 모두 같게 행동 했을것이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안회도 태평성대에 살았다면 하우와 후직처럼 행동했을 것이고
하우와 후직 역시도 난세에 살았다면 안회 처럼 행동했을 것이라며 “처지가 바뀌면 모두 그러했을 것”이라는 뜻으로 맹자의 이루편에서‘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역지즉개연’이라는 표현이 약간 변형되어 오늘날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떠세요?

오늘날에 역지사지를 습관처럼 사용한다면 세상살이가 덜 각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역지사지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이슬露(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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